
당신의 이름
인시 (@_real_name)
이름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타인을 부르고자 하는 욕구, 타인과 구별되고자 하는 욕망,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희망. 누군가는 그 많은 마음이 담긴 이름에 힘이 있다고 믿었다. 윤은 그것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이 세상에서는 그렇다. 누군가의 이름이 몸에 나타나고, 그 이름이 운명이라고 믿게 되는 이 세상에서는.
간혹 이름이 새겨진 사람들이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는 일도 있었지만,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운명처럼 낭만적인 것이 없으니 이름이라는 것은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꽤 멋진 일처럼 여겨졌다. 그만큼 이름이 일찍 발현된 아이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어린 시절, 관심의 중심이 되고 싶어 하는 많은 아이들에게는 이름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다. 가끔은 없는 이름을 써넣는 아이들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윤은 달랐다. 청소년 시기쯤 발현되곤 하는 이름이 윤에게는 날 때부터 있었으나, 그건 제대로 된 이름이 아니었다. 군데군데 흐릿하고 끊긴 이름이 상처처럼 새겨져 있었다. 반듯한 까만색의 단정한 이름이 아닌, 검붉은 빛의 피가 번진 듯한 이름은 꼭 못으로 갓 태어난 아이의 피부를 긁어내린 것만 같아 보였다.
- 불길한 이름이다.
과학이 이렇게나 발전한 이 세상에, 집안 어른들은 윤의 몸에 새겨진 그 이름이 불길하다고 손가락질했다. 윤의 기억 속에는 없는 일이지만 다섯 살쯤 이름을 제거해 본 적도 있다고 한다. 제대로 마취도 하지 못해서 엉엉 울었었다고, 어머니는 집안 어른들의 등쌀에 못 이겨 어린 아들을 수술시켰던 것이 그렇게 미안했다고 했었다. 아마 아픔에 대한 충격이 커서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게 아니겠냐는 어머니의 말에 윤은 아마 그것이 맞을거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기억에 빈틈을 만들고 부모의 마음에 상처를 만들었던 일이었지만 윤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벌겋게 달아오른 피부가 가라앉기도 전에 붉은 이름은 더 붉어져 피부 위로 떠 올랐다. 의사도 이런 것은 처음 본다며 당황했고, 부모님은 다시 한번 해보자는 의사의 말을 거절했다고 한다. 차마 울고 있는 어린 아들에게 두 번씩이나 할 짓은 못 된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윤은 그래서 제 몸에 남은 그것을 이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그저 상처일 뿐이었다. 누군가, 운명이, 어색하게 할퀴고 가버린 상처. 그 이상의 의미는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이름은 쇄골아래에 있었다. 옷이 물에 젖어버리지 않는 이상 보이지 않을 곳이라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몇번 했다. 누가 보아도 진짜 이름 같지 않아 보이는 것은 때론 이름이 부러워서 어설프게 칼로 긁어내리는 아이들의 몸에 남은 상처처럼 보이기도 했다. 혹시나 들키게 되면 그런 어색한 변명을 하자고 생각했다. 어설픈 상처 자국이 그렇게라도 도움이 된다니 다행이었다.
애초에 손가락질을 받아온 아이가 활달한 성향을 지닐 리도 없었다. 그래도 어릴 적엔 장난도 쳤던 것 같다. 그러나 가장 친하던 나이 차 많이 나는 형이 신부가 되고부터는, 마음 줄 사람도 마땅치 않아 그나마도 자취를 감추었다. 애초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부모님과 집안 분위기상 마음껏 장난을 칠 새도 없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그래도 친한 친구가 있었던 것 같은데 고등학생이 된 윤이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친구라고 부를 사람이 없었다. 자꾸만 이름을 들킬까 봐 몸을 사린 탓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열여덟이 되었을 때, 윤은 어디선가 자신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상처 같은 이름이 나타나는 경우는 딱 하나라고 했다. 이름이 나타나기 전, 상대가 이미 사망한 경우.
상처처럼 남아 제대로 읽을 수도 없는 이름의 주인이 서글퍼, 윤은 상대의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면서 밤새 울었다. 그것은 새까만 방구석 장례식의 곡성이었다. 그것이 제 운명의 상대를 위해 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알지도 못하는 제 운명의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눈물뿐이어서 울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윤은 여행을 떠났다. 가족들의 반대가 거셌지만, 윤은 여행을 강행했다. 우습게도 그것이 윤의 가장 첫 반항이었다. 언제나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따르고 반항 한 번 한 적 없던 아이는 이유조차 밝히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 것인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아이를 보내는 것이 부모로서 편할 리 없었다. 그러나 윤은 강경했다. 이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윤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날이 맑아 시야를 가리는 높은 건물이 없으면 저 먼 곳까지 뚜렷했다. 그런데도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윤은 자신의 이름을 찾고 있었다.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대충 남아 있는 것으로 보면 성에 ‘ㅇ’, 이름의 첫 번째에는 ‘ㅇ’, 두 번째에는 ‘ㅕ,ㅇ’ 이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걸 기반으로 윤은 자신의 생일 직전에 죽은 사람들을 찾았다. 하루 사망자 수 평균 700여 명. 거기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골라내고, 또 그 사이에서 자신이 가진 이름들만 골라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윤은 끈질기게 매달렸다. 어쩐지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은 평생 죽은 이의 이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윤에게는 이름이라는 것이 다른 이들이 가진 것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건 주박이었다. 태어난 그 날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에 대한 연정은 윤의 심장을 쥐어짜 숨이 들어찰 공간조차 주지 않았다. 그 상태로, 20년을 살아왔다.
이름을 그저 상처라고 몇번이나 되뇌면서도 사실 제 몸에 남은 이름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걸 외면할 수가 없었다. 20년 동안 자신의 마음을 기만해왔으니 이제라도 편해지고 싶었다. 그것이 욕심이라도 상관없었다.
만약 이미 상대가 죽어버렸다면, 죽은 이가 누운 자리라도 보고 오리라. 그래야 이 답답하게 꽉 막힌 마음에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몇 날 며칠을 매달려 손에 쥔 이름은 겨우 다섯 명이었다. 세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 나이 차가 아주 많이 날지도 모르지만, 우선은 제 나이 또래만 찾았다. 여기서도 실패하면 그때는 다시 찾아봐야겠지. 하지만 어쩐지 그 전에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윤은 이상하게도 그런 예감이 들었다.
그 예감은 정확히 열흘 후, 윤을 배신했다.
다섯 명의 집을 모두 찾았지만 아무런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누가 누구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하기는, 이미 죽은 사람인데 사진을 본다고 별다른 마음이 들 리가 없었다. 윤은 순진했던 제 생각에 실망한 채 동쪽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자신은 하필이면 이런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 평생을 얼굴도 이름도 모를 사람에 대한 연정으로 숨이 막혀 살아갈 운명이었다.
그냥 동쪽 바다에 가고 싶었다. 다들 상심하면 바다에 가곤 하니까. 상심한 윤이 바다에 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을 보고 나면 기분이 나아질지도 모르지. 새파란 바다는 어쩌면 이 서러운 마음을 삼켜줄지도 모른다.
작은 마을은 여관조차 없었지만, 상관은 없었다. 오래 머물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윤은 마을의 가장 높은 절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길조차 제대로 나지 않은 곳이었지만 땅에 납작 붙어있는 나무와 풀들은 그다지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운동화 앞이 짓이겨진 풀물에 물들어 녹색으로 엉망이 되고서야 도착한 절벽 위에서 윤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새파랗고 잔잔한 물결이 금방이라도 모든 걸 집어삼킬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윤의 마음을 삼켜주지는 못했다.
어느 한구석 답답한 마음이 트이기는 하지만 윤의 평생을 괴롭혀온 마음마저 가져가지는 않았다. 이렇게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어째서 자신에게는 이런 이름이 새겨진 것일까. 그저 상처가 될 뿐인 이름. 단순히 아플 뿐인 이름. 어느새 바닷물이 눈가로 옮겨와 아프게 번졌다.
“거기 위험한데. 죽으려는 거 아니면 내려와요.”
그때, 언제 섰는지도 모를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심장이 크게 뛰는 것을 느끼며 윤은 눈물이 번진 눈가를 손등으로 벅벅 닦아냈다.
“아, 네.”
“여기서 뛰어내리면 물에 잠겨 죽는 게 아니라 돌에 찍혀 죽어. 가끔 있거든.”
무심한 듯 덤덤하게 말하는 목소리는 윤을 그냥 지나칠 생각이 없는지 종알종알 말이 많았다. 눈가가 붉었지만, 그 목소리를 무시할 수가 없어 윤은 마지막으로 바다의 모습을 눈에 담은 채 천천히 뒤로 돌았다. 울었다는 것을 남자가 알아챌까 봐 괜히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못 보던 얼굴인데, 도시에서….”
“…아….”
무심한 투로 말을 하면서도 혹여나 윤이 뛰어내리기라도 할까 걱정이 되는지 말을 붙이던 남자는 윤과 눈이 마주친 순간 말을 멈추었다. 그건 윤도 마찬가지였다.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아픔에 멍청한 소리를 내뱉는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아픈 것인지, 아니면 상처일 뿐인 이름이 남은 자리가 아픈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알았다.
이 사람이다.
바람이 부는 절벽 위에서 윤은 제 옷 아래를 보지 않아도 쇄골 아래 새겨진 이름이 완전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 이름의 주인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완전한 삶을 살지 못했을 뿐이다. 지금 서로를 만난 순간 남자의 삶이 완전해진 것이다. 윤은 누군가에게 설명을 들은 것도 아닌데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저 남자도 같은 것을 느꼈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름이, 뭐에요?”
온전치 못한 삶을 살았을 자신의 반쪽에 대한 서글픔과 이제라도 당신을 만난 환희가 눈가에 맺혀 흘렀다.
“…윤화평.”
“…저는…. 저는 최윤이에요, 윤화평 씨.”
화평은 윤이 서 있는 쪽으로 한걸음, 발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