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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의 탈각

​찬손 (@choiyoon_ch19)

- 누가 제일 보고 싶어? 
사람 죽이는 신부님, 이라고 남자가 대답했다. 어둠 속에서 물기를 먹은 까만 동공이 반질거렸다. 

*

피와 뼈를 분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화평에게는 특히나 더 그랬다. 세간에서 센티넬이라고 부르는 인종들과 섹스를 하고 돈을 받는 게 화평이 하는 일이었다. 손을 잡으면 그것들은 안정을 하고, 숨을 섞으면 반 박자가 더 빨라졌다. 
화평은 불법적인 가이드 일로 이럭저럭 삶을 연명해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 시절 화평의 세상은 아직 단순하고, 선명했다. 제 능력이 그나마 돈이 된다는 걸 안 순간부터 그거면 족한 인생이었다. 더 복잡한 세상에 편입되고자 하는 생각도, 능력도 없었다. 센터에 등록하고, 국가에서 키워지는 인생들도 있었다. 그 세계에 들어가고자 하는 생각이 화평에게는 전혀 없었다. 
개밥그릇에 밥을 먹던 아이가 제 능력을 알게 된 순간, 아, 이제는 살 수 있겠다. 거품을 물고 쓰러진 센티넬의 손을 잡은 후로, 화평에게 능력은 내내, 밥벌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우리 성당 신부님이 다 죽어간다. 좀 도와줄래 화평아. 


동네 어르신의 연락을 받고 성당으로 걸음을 옮기면서도, 화평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늘 하던 대로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쁘게 생겼네. 그게 윤을 처음 본 소감이었다. 열이 올라 정신없는 몸은 사지가 벌벌 떨리고 있었다. 센터에서 관리받지 않는 대신 그는 성당에 있었다. 이런 식으로의 허가가 가능한 것인지 화평은 의문이 들었다. 그는 일종의 군종 신부로서 부역한다고 했다. 가톨릭계와 정부의 합의안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는 성당에 있었고, 그동안 매칭됐던 가이드들은 그를 감당하지 못했다. 마치 자가면역질환처럼, 능력이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해 저를 공격하는 신부. 
화평은 따로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다. 감정적 동화, 라고 이름 붙여진 일종의 생득적 스킬을 사용할 뿐이었다. 손을 붙잡고 머릿속으로 말을 걸듯 더듬는다. 그리고, 화평의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끔찍한 기억들이 있었다. 
벌판에 서서 윤의 감정을 온 몸으로 맞아내며, 화평은 윤의 능력이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아주 많은 사람을. 윤의 정신은 몇 번이고 폭격을 반복했다. 윤이 파병을 나갔던 그 곳의 기억을 반복했다. 폐쇄된 지구의 낡아 무너져내린 흙벽의 집들이 그나마도 형체를 알 수 없게 터져나갔다. 신부는 폭격을 반복하고, 죽어 나자빠진 아이의 시체 앞에서 묵주알을 굴렸다. 
화평은 그 앞에 혈혈단신이었다. 무력했다. 윤이 죽으면 안 돼요, 라고 절박하게 속삭였다. 죽지 말라니. 지금 죽어가고 있는 건 당신인데. 눈 앞에 있는 사람을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모래 바람 속에 선 윤의 손을 잡았다. 너를 구하러 왔어. 정신 차려. 반복되는 폭격과 소음을 헤치고 다가가 윤의 손을 잡자, 신부가 놀라며 돌아보았다. 손을 잡은 순간, 아이는 잔뜩 어려져 있었다. 돌아가지 않을래요. 미안해요… 죽이고 싶지 않았어. 내가 잘못했어요….
이 감정은 누구의 것인가. 모래 바람 속에 선 윤의 손을 잡고, 현실에서 정신을 잃은 윤의 숨을 붙잡아 숨을 불어넣으며 화평은 그만 절박해지고 말았다.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모래 폭풍 속에서 보았던 윤의 죽고 싶어하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나같이 쓰레기처럼 사는 사람도 사는데…. 너는 왜 죽으려고 해. 몇 번이고 까라지는 윤의 정신, 허물어지는 윤의 육체를 잡고 화평이 녹아내리는 윤의 얼굴을 눈에 새겼다. 살이 쉽게 접붙는 만큼 목숨줄도 이어붙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윤은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이었다. 센티넬, 가이드, 능력, 그딴 걸 다 떠나서 그냥, 좋은 사람. 제가 가진 능력이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게 싫어서 평생 주의 종으로 살고자 하는. 제가 원해서 한 것도 아닌데 누군가에게 죄를 지었다고 피를 토하며 우는. 그냥 이대로 죽어지면 안 되냐고 울다가도 차마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살이 닿으면 감정이 생기는 것인가. 다만 밥벌이로 족한 능력이었는데. 어쩌자고 이렇게 덥석, 사람을 살리겠다고 했는지…. 가이딩을 한다는 것은 동질감을 느끼는 일이었다. 사람은 익숙해질수록 끌어당기고, 필연적으로 좋아하게 된다. 화평은, 그런 지가 오래 되었다. 윤이 모르는 새에. 윤이, 정신을 잃고 화평의 목을 끌어안으며 눈물로 젖어들 때에. 윤이 죽고 싶어할 때에… 화평은 윤을 이해하게 되었다. 죽지 않기를 바랐다. 도와주고 싶었다. 
화평은 제 앞에 산이 앉았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구덩이든가. 그게 무엇이든, 스산하고 바람이 부는. 윤이, 더 이상 저를 도와 줄 필요가 없다고 말했던 바로 그 때에. 

- …뭐? 왜?
- 제가 알아서 하려고 합니다. 윤화평 씨가 위험해요.
- …내가 뭐가 위험해. 
- 꿈을 꾸시죠. 폭발하는 꿈. 사람들이 죽는 꿈.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 윤의 말이 칼날처럼 화평의 폐부를 도려냈다. '아무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 아무에 화평은 해당하지를 않았다. 그게 화평을 앞이 안 보이는 시꺼먼 어딘가로 떨어뜨렸다. 

- 신부님. 하나만 물어보자. 나랑 자면서… 한 번이라도 진짜로 흥분한 적 있어?
- 있어요.


대답은 선선히도 나왔다.


- 저도 사람입니다. 


사람. 이전에 사제. 이전에 센티넬.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최윤을 사람이 아니게 하는 것들.  


- 다만… 그 이후 육체의 욕망에 흔들리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할 뿐이에요. 


내리깐 눈이 조용히 물들었다. 


- 그리고… 저로 인해 더럽혀졌을 윤화평 씨의 영혼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화평의 숨이 턱 막힌다.


- 기만적이라고 생각하시죠. 저 때문에 윤화평 씨가 더러워지는 것인데요….


아니, 나는 네가 사람의 욕망을 알았으면 좋겠어…. 네가 서 있는 곳이, 사람이 수없이 죽어나가는 곳이 아니라… 바닥이 보이지 않는 모래 구덩이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곳이었으면 좋겠어. 
폐허가 된 제 속을 좀 보라고 화평은 윤을 닦아세우고 몰아치고 똑같이 상처 입히고 싶었다. 손을 얽으면 심장이 뛰고 피가 돌고, 살을 붙이는 곳마다 가쁘게 우는 그 순간에 그만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그게 화평을 화나게 했다. 가슴 아프게 했다. 솟아나오는 눈물을 참지를 못하고 화평은 짐승새끼처럼 꺽꺽대며 찬바람에 얼굴을 삭였다. 

 

 

 

 


화평은 윤이 원하는 대로, 윤의 가이딩을 그만두었다. 밥벌이까지 그만둔 건 아니었다. 가이딩을 원하는 센티넬은 도처에 널려 있었고, 화평의 육체는 그 사이를 흘러다녔다. 누가 제일 보고 싶어? 모습을 바꾸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물었다. 보고 싶은 게 누구든 맞춰줄 테니까 말해 봐요. 화평이 대답했다. 사람 죽이는 신부님. 얼굴이 하얗고… 키가 크고… 죽고 싶은 얼굴을 한 사람. 


- 그 사람 사랑하는구나. 


윤과 꼭 닮은 얼굴을 한 남자가 속삭였다. 당신 그 사람 사랑하는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라도 보고 싶지. 그가 목을 끌어안을 때, 화평이 허리를 더 깊게 찔러넣으며 눈을 감았다. 폐허는 아직 거기에 있는지. 아직 거기에 있다면 문을 걸어 잠그고 싶었다. 온통 깊은 구덩이인 채로, 아무도 오지 못하게 닫아버리고 싶었다. 
돌아가자. 아직, 그 신부는 거기에 있는지. 제 사랑이 거기에 죽어 있는지. 그 시체를 뒤적이기 위하여, 돌아가자.

 

 

 

 

 

 


미사가 끝난 시간, 주말 오후의 햇살을 뚫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본당 문 앞에 서서 신부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인사를 전하는 의무를 다한다. 안녕히 가십시오. 안녕하세요 형제님. 네, 건강하시죠? 수산나 자매님. 웃으며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인사를 나누는 최윤. 화평은 인파에 섞여 신부 앞으로 쓸려갔다. 얼마 되지 않는 걸음마다 심장이 떨어져 내렸다. 


쿵. 


기억하고 있을까. 


쿵.


아니, 기억하지 못할 거야.


쿵.


관계는 끽해야 서너번이었다. 기억을 못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다른 가이드를 구했다면 그 뿐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합장하듯 손을 모았다. 가톨릭의 기도법 따위 알지 못한다. 화평은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모르고, 가슴께로 손을 올려 맞잡고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최대한 평범한 신자처럼 보이도록. 그러나, 얼굴을 알 수는 있게, 충분히 천천히 얼굴을 맞보며 고개를 내린다. 눈이 마주치고, 젊은 신부의 눈매가 휘었다. 

- 평안을 빕니다.

최윤의 머리 위에서, 오후의 햇살이 밝게,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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