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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교자​ (@sontheyun_)

※ 본 글에서 가이드의 가이딩은 센티넬과 가이드가 접촉하여 불안정하고 예민한 상태의 센티넬에게 불안을 진정시킬만한 장면이나 행복했던 순간의 감정, 좋은 상상 등을 전이시켜 보여주는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친구사이라면 즐거웠던 추억을, 애인사이라면 사랑을 나누었던 순간을, 이도저도 아닌 타인이라면 강아지나 고양이, 꽃 같은 풍경을 보여주는 식입니다. 


 “최윤! 괜찮아?”


 윤의 코에서 시뻘건 핏물이 흘러내렸다. 윤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제 얼굴을 타고 흐르는 코피를 닦아내다가 칼로 푹 쑤시는 것 같은 고통에 손을 내려다보았다. 양 손 바닥 정 가운데에 무언가에 찔린 듯한 창상이 생겨있었다. 언제 다쳤나 생각해보면 화평을 돕기 위해 이 방에 들어온 뒤로 제대로 된 기억이 없었다. 눈을 깜박이며 화평을 돌아보자 화평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저를 향해 나가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전 괜찮습니다.”
 “뭐가 괜찮아! 밖에 있으라니까 왜 굳이 들어와서!”
 “괜찮다고 하잖습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집중하세요!”


 윤의 말에 화평이 눈으로 욕을 하는 게 느껴졌다. 방에 들어오기 전 윤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마에서부터 천천히 부어내렸던 성수는 피부위에서 부글대고 있었다. 발갛게 부어오르는 피부가 눈에 훤히 보이고 얼굴이 피범벅이 되서 괜찮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 불안해하는 화평에게 안심을 주려 윤이 묵주를 쥔 손에 힘을 주면 상처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 묵주 알을 타고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화평은 그 모습을 보며 씨이발 하고 욕을 뱉더니 킬킬대는 부마자에게 올라타 구마를 진행했다.
 이렇게 되리라는 것은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박일도라 오해할 만큼 위험한 악마였다. 이번 건은 정말 위험하니 들어오지 말라는 말에도 윤은 고집을 피워 기어이 들어와 방 한구석을 채웠다. 구마가 진행될수록 독이라도 퍼진 것 처럼 코가 맵고 무거운 공기에 숨도 성히 쉬지 못했다. 윤이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려도 귓가엔 고막을 찢을듯한 환청이 들렸다. 환청과 화평의 목소리가 섞여 웅웅대고 말소리를 들어도 의미를 파악할 수 없게 되었을쯤 사태는 벌어졌다. 
 구마에 집중하고 있던 화평은 코로 숨을 들이키다 피가 넘어가 콜록이는 소리에 윤을 돌아볼때까지도 몰랐다. 겁먹은 눈을 하고서 괜찮다고 하는 윤에게, 그리고 윤이 저렇게 다칠때까지 구마를 끝내지 못한 제 자신에게 화가 났다. 집중 해야한다는걸 알면서도 윤이 신경쓰였다. 
 화평의 상태를 확인할수 있도록 방 안에 켜둔 불이 확 타올랐다가 곧 꺼질것처럼 흔들리길 반복했다.
 이러다 화평마저 잘못될까 윤은 무거운 다리를 끌고 화평의 뒤로 다가서 뒤에서 안으며 구마자의 목을 누르고 있는 화평의 손목을 붙들었다. 성수로 젖어있는 윤의 손이 닿은 순간 불에 타는듯한 느낌에 화평이 이를 악 물었다. 
 화평이 아무리 진정하려해도 한번 끓어오른 속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쓸어낼듯 파도가 몰아치고 장대비가 쏟아치는 것에 비해 윤은 침착하게 화평과 먹었던 커피며 화평과의 첫 입맞춤을 했던 그날의 느낌, 화평과 함께 가던 중 신호등에 걸려 있을 때 넘어질뻔한 아이를 보고 함께 놀랐던 일, 개구쟁이처럼 웃던 화평과 구름사이에서 새어나온 한줄기 햇빛이 화평의 등 뒤를 밝히는 모습 등 두 사람의 기억들을 끄집어내 화평에게 보여주었다. 
 화평은 어쩐지 숨이 막혔다.  자신은 기억도 나지 않는 소소한 것들이 윤에게는 다 신의 은총이고 행복이었다. 화평은 답답한 속을 토해내듯 부마자 몸에 있는 악마가 사라져 부마자의 몸을 떠나기를 몇번이고 소리내어 빌었다. 다행히 욱욱 거리며 속을 올리던 부마자는 그륵거리며 알수 없는 것들을 개워내었고 구마는 끝이 났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방문을 단단히 잠궜던 것을 열자 부마자의 친지들이 쏟아지듯 들어왔다. 바닥에 흥건한 피에 화평을 흘겨보다가도 그것들이 부마자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자 입을 다물고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실신한 부마자를 데리고 나갔다. 


 “……잘 됐나요?”
 “엉, 잘 됐어.”
 “다행입니다. ”
 “뭐가 다행이야 그꼴을 하고서. 병원가자. ”
 “윤화평씨가…… 다치지 않으셔서……. ”


 윤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떠서 뭔가 더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 서있던 자세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다급하게 화평은 자신의 손목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당겨 윤을 제 품안에 안은채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최윤? 최윤!”


 화평이 다급하게 윤의 볼을 두드리다가 윤의 목 옆을 짚어 맥박을 확인하였다. 맥은 뛰고있었다. 이번에도 기절인 듯 했다.  


 “구급차 불러!”


 화평의 목소리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몇 십초전까지 대여섯의 사람이 따개비처럼 매달려 있던 문이 훤히 열려있었지만 밖은 쥐죽은듯 조용했다. 모든 신경을 죄다 귀에 집중해보아도 화평의 목소리에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세상에 오로지 둘밖에 없는듯한 소름 끼치는 정적 속에서 화평이 윤의 어깨를 한 팔로 단단히 움켜쥐고 119를 불렀다. 미안해, 미안해. 화평은 제 품안에 안겨있는 윤의 몸이 식지 않도록 몇 번이고 팔이며 다리를 문질렀다. 

**

 최윤과 윤화평은 한달 전 교구에서 마련한 가이드와 센티넬을 소개시켜주는 모임에서 만났다.  다양한 능력을 갖고 있는 센티넬들이 모이는 자리니만큼 술도 마시지 않고 학회 발표장처럼 넓은 교육실을 빌려 주최의 주도를 따라 옆사람과 인사를 하고 10분간의 대화를 나누고 자리를 바꾸며 진행되었다 이때 자리를 옮기는건 가이드였다. 자신과 딱 맞는 가이드가 없으면 예민해진 감각을 감당할수 없는 센티넬과는 달리 가이드들은 연인사이가 아닌 친구사이 정도의 관계라면 둘 셋도 가이딩 할수 있었다. 혹시나 선택받지 못할 센티넬들이 능력을 사용하여야 할 때 그래도 눈에 익은 가이드들을 붙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번 회의 참가인원은 센티넬과 가이드 다 해도 10명뿐이었고 정기적인 자리가 아니다보니 자신과 짝을 맞춰줄 센티넬이나 가이드가 절실한 이들만 모여있었다. 그럼에도 화평은 자신의 옆에 앉은 가이드가 화평의 옆에 앉고 싶지 않아함을 알았다.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었다. 화평이 혹시나 모를 기대로 제 이름과 나이, 사는 곳, 능력 등을 줄줄 이야기하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무성의한 대답으로 응대하더니 이렇게 묻는 것이다. 


 “……그 소문, 사실인가요?”
 “아, 하하, 하. 글쎄요. ”


 화평은 능력제어를 실패해 자신의 가이드를 죽였다는 소문이 제 꼬리로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정도 긍정도 아닌 화평의 대답에 가이드는 네에 하더니 화평을 위아래로 훑고 제 이름마저 알려주지 않고 시선을 피했다. 화평은 어차피 안될거라는걸 알고 있었지만 괜히 기분이 상했다.
 그래도 큰 상관하지 않았다. 화평의 모든 관심은 단 하나 최윤에게 쏠려있었다. 이 모임에서 제일 피하고 싶은 센티넬이 화평이라면 제일 피하고 싶은 가이드는 최윤이었다. 저에게 달려있는 소문처럼 최윤에게도 좋지 않은 소문이 따라다녔다. 그 덕에 이 회장에서 화평과 맺어질 확률이 더 높은 가이드를 고르자면 최윤이었다.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는것보다 윤이 제 짝과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엿듣는 것이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이었다.


 “최윤 마태오입니다.”
 “아 네. 최윤씨. 하하. 반가워요. 짝이 있으셨다던데 여기까지 나오셨네요?”
 “짝은 아니고 제 대부께서 센티넬이셨기 때문에 가이딩을 배울때부터 함께 하는 파트너 관계였습니다. ”
 “그래요? 그렇다고 해도 어릴때부터 합을 맞추셨으면…… 잘 하시겠네요. ”


 다른 사람이 들어도 상관 없다는 듯 목소리를 낮추지도 않고 비꽈대더니 킥킥 웃기까지 하는 목소리가 화평의 귓가에 날아와 박혔다. 돌아보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근질근질함을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았다. 대놓고 하는 비난에도 시선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제 손등에 도드라지는 핏대를 손으로 만지며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 윤이 화평과 시선이 마주치자 주최측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거기! 옆사람한테 집중하세요!”
 “예~”


 도와주려고 한건데 콕 찍어 지적당한 화평이 다시 앞으로 몸을 돌리고 슬쩍 제 옆사람을 바라보았다. 제 옆의 가이드는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만 빨라졌을뿐 화평의 무례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길고 긴 10분이 지나고 드디어 윤이 제 옆에 앉자 가벼운 목례를 하는 순간조차 눈에 꼭꼭 새기며 화평이 씩 웃었다. 


 “마태오입니다. ”
 “마태오? 난 윤화평인데.”
 “저 아세요? 왜 초면부터 말이 그렇게 짧습니까?”
 “저 몰라요? 우리 동갑이잖아요. 서로 유명인사라 알줄 알았는데. ”
 “모릅니다. ”


 화평은 윤에게 에이 그러지말고. 어디 살아요, 지금 누구랑 같이 일해? 하고 아까의 사람에겐 묻지도 않았던 것들을 이것저것 물었다. 윤은 모르는척 글쎄요, 그러게요, 잘 모르겠네요 하며 제 앞에 앉은 가이드의 뒷통수만 바라보고 의미없는 대답들만을 하였다. 결국 화평은 자신이 애가 타는걸 알면서도 이렇게 구는 윤이 얄미워 목소리가 커졌다.


 “나한테는 왜 이래요? 그러지 말고 나랑 하지? 어차피 신부님도 할 사람 없잖아.”
 “뭐,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하긴 뭘 해요?”
 “할거야 뻔하지.”
 “싫습니다.”
 “왜요? 나 잘 하는데. 지금까지 가이드 없이도 잘했고 너랑 하면 더어 잘할수 있을 것 같은데.”


 신부님도 내가 필요하잖아요. 화평이 덥썩 윤의 손을 잡은 순간 윤에게 벅찰만큼의 욕망이 흘러들어와 윤은 소스라치며 손을 털었다. 화평은 그대로 뿌리쳐져 책상에 퍽  부딪힌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두근거리는 설렘과 함께 최윤이 입으로 낼수 없을 것을 섞어 무방비한 윤에게 보냈다. 
 몇 초도 되지 않는 순간 허리가 저릿할만큼의 욕망을 정면으로 받아낸 윤은 의자를 앞으로 더 끌어다 명치가 책상에 닿을만큼 책상에 바짝 붙어 앉았다. 


 “저한테 왜 이러시는겁니까?”
 “좋아서 그렇지.”


 날아갈 듯 가벼운 고백에 윤이 어이없어 인상을 썼다. 너 하나만 나한테 넘어오면 우리가 구할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면서. 어금니를 혀로 살살 핥으며 생각을 가다듬던 화평은 시간을 확인하고 1분이 남았을때 이번엔 윤의 손을 손끝이 빨개질만큼 단단히 붙들고 윤의 손에 강제로 제 번호가 적힌 종이를 쥐어주었다.


 “진짜야. 버리지 마.”
 “…….”


 윤은 손안의 종이를 우그적 구겨 손에 쥔채로 화평을 지긋하게 노려보았다. 아까완 달리 이번엔 손이 닿았음에도 아무런 전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처음 본 사이에 의도를 알수 없는 고백을 하고 욕정을 자신에게 대놓고 들이대는 화평이 부담스러웠다. 
 아까는 그렇게도 길었던 10분이 다 지났는지 종이 울리자 윤이 주저없이 앞자리로 옮겨 앉았다. 화평이 대놓고 호의를 표해버린지라 다른 사람들은 그 ‘윤화평’이 마음에 들어하는 ‘최윤’을 호감의 눈이 아닌 호기심의 눈으로 보았다. 윤은 꽤 곤란한 얼굴로 상대들에게 말을 몇번 붙여보다가 나중가선 포기해버렸다.

 회장이 파하고 윤을 포함한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화평은 주최측으로 달려가 진상을 피웠다. 최윤의 소문을 들었다. 짝이 없는지 오래되지 않았느냐. 만나보니 괜찮을거 같더라. 저 최윤이라면 나도 정식으로 등록되어 일할수 있는게 아니냐며 따져물었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최윤의 번호를 줘서 내가 설득이라도 해볼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교구에서는 두 사람의 합의사항이 아니라면 함부로 가이드의 연락처를 주거나 다음 약속을 강제할수 없다 하며 이를 거절하였으나 화평은 어차피 교구에서도 센티넬인 자신에게 가이드 한명을 붙여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그게 최윤이었으면 한다며 부탁같은 강요를 했다. 그러나 교구 입장에서도 화평과 윤을 붙여두는건 지뢰가 있음을 알고도 불발이길 바라며 그 위를 걷는것과 같아 긍정적인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화평을 돌려보냈다.
 그러나 이후 화평의 상황은 더욱 안좋아져 화평은 가이드없이 악마를 구마하는걸 보조하다 악마에게 몸을 내어줄뻔 하거나, 기껏 구해다 준 가이드에게 자신의 불안과 화를 역으로 전이시키기도 했다. 
 결국 교구는 최윤을 향해 불이 붙어버린듯한 화평이 마음을 돌릴만한 가이드를 찾는 것은 포기하고 윤을 화평의 상대로 고민하게 되었다. 화평이 말했듯 어중간한 교류로 화평의 감정을 들쑤셔 능력제어를 못하게 되기보단 역으로 동화되더라도 이성적으로 화평의 마이너스적인 감정폭을 눌러줄 윤이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고민 끝에 교구청에서는 마치 우연인것처럼 꾸며내어 두사람이 만날 자리를 만들었다. 윤은 카페에서 자신과 합을 맞춰볼 센티넬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시간을 5분 남기고 화평이 카페문을 열고 들어서자 윤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니길 바라며 고개를 숙이고 제 손을 만지작거리던 윤의 맞은편에 화평이 앉자 윤은 한숨부터 내어쉬었다. 


 “당신은 미안함도 없습니까?” 


 화평이 윤을 원한다며 교구에 저질러놓은 일은 입에서 입으로 변질되고 기존의 소문들과 섞여 더러운 소문으로 완성되었다. 윤은 소문의 원흉이 화평이라는걸 알고 나쁜 말을 입으로 내뱉었다가 고해성사를 했다. 
 사실 화평이 아니더라면 자신에게 마음을 두거나 관계형성을 시도할 센티넬이 없다는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센티넬과의 1:1 관계가 아니라 다대일로 사람들을 도와줄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윤의 가이딩이 해당 사람과의 교류로 쌓아진 애정이나 호감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좋아할만한 보편적인 좋은 것들을 보여주는 형식이었기때문에 기대해볼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화평이 튀어나와 윤의 작은 바램을 꼬아놓았다. 그 덕에 첫 마디부터 가시가 박힌채로 화평에게 내뱉어졌다.  


 “네. 없습니다. 그런거 이미 없는지 오래됐습니다. 미안할거였으면 신부님한테 이렇게 안들이댔지.”
 “들이대다뇨, 오해살만한 말 좀 그만 하세요.”
 “오해? 무슨 오해를 말하는건지 모르겠는데……. 진짜 좋아서 그런다니까.”
 “됐습니다. 가보겠습니다.”
 “그럼 이 사람은 또 한참 기다려야겠네.”


 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다 화평이 내민 핸드폰 화면에 멈추어섰다. 이러니 자리를 만들었구나. 사진속의 남자는 윤도 잘 아는, 몇 안되는 성당의 청년부 신도였다. 


 “이 분을 윤화평씨가 왜……?”
 “왜긴 왜겠어. 그쪽에서는 조현증인것 같다더라. ” 
 “그럼 병원을 보내야죠.”
 “진짜 병원갈 사람들이면 이쪽으로도 안넘기는거 알잖아. 뭐, 이쪽 사람들은 교구쪽에서 넘어온 일 맡았다가 괜히 사이비니 이단이니 욕얻어먹을까봐 안한다고 하길래 내가 받은거긴 한데, 니가 정 그렇게 하기 싫다고 하면…….”


 화평을 말을 이어나가며 손끝으로 사진속 사내의 얼굴을 톡톡 건드렸다. 조금 어두운 카페 조명 밑임에도 화평의 연한 캬라멜색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윤은 그 눈을 바라보며 윤의 의사를 무시하고 떠넘기듯 화평과의 자리를 만들어낸 교구에게 향하는 나쁜 생각을 물밑으로 가라앉혔다. 
 윤이 그 손끝을 가만 바라보다 짧게 한숨을 쉬며 다시 자리에 앉으며 이번만이에요. 하고 말했다. 윤은 화평이 어엉 하고 하는 저 진심이 아닌 하는 대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말 하고싶지 않았다. 이렇게 한번 얽히기 시작한다면 이게 시작이 될것이었다. 감이 모든걸 말해주고 있었으나 화평의 손끝이 닿는 저 사내를 모른척할 수가 없었다. 


“정말, 이번만이니까요. 교구에 등록하진 않겠습니다. 센티넬용 질답지 갖고 계시나요? 다음에 만날때 작성하셔서 가져다주셨으면 하는데요.”
“왜? 나한테 궁금한거 있으면 신부님이 직접 물어봐줘요.”


 참아야 한다. 윤은 벌써부터 속이 아려오는것 같아 명치 위로 손을 올려 꾹 눌렀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화평과 거리를 두어야 했다. 그러나 자꾸 툭툭 뱉는 화평의 반말에 울컥 치미는 화를 참기 어려웠다. 개인별로 호불호가 다르고 성향이 다르니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가이딩을 할 때 일어날 불상사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한 질답지를 요구하는데도 이런 반응이라면 뭘 더 물어봤다가는 아주 오늘부터 1일이냐고 물어볼것만 같았다.


 “됐습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아……. 지난번에 주셨던 그 번호로 추후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벌써 가?”
 “네. 다음에 뵙죠.”


 윤은 서운한듯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화평을 두고 자리를 벗어나  교구청으로 향했다. 지금껏 화평을 가이딩했던 사람들이 남겨놓은 평가서 및 사건관련 보고서들, 화평이 직접 작성한 질답지 등 가이드들을 많이 거쳐갔다더니 교구에는 생각보다 윤화평 관련 자료가 많았다. 작은 소책자라도 한권 만들어낼수 있을 것 같은 분량을 복사해 가방이 터져라 쑤셔넣은 윤이 이번엔 아주 느릿한 발걸음으로 사제관으로 향했다.  
 아득하게 해가 저무는 사제관에서 윤은 냉장고에 있던 보리차 한잔을 따라두고 식탁에 앉아 서류를 읽어보기 시작했다. 
 처음 보게 된 서류는 화평이 지독한 선임을 만나 자신이 센티넬임을 자각하였다는 내용이 담긴, 센티넬로서 가이드에게 개인취향이나 트라우마 등을 고백하는 질답지였다. 디테일한 이야기들은 모두 생략되어있는 내용이었으나 윤은 읽는것만으로도 열이 오르는 듯 해 마른 목을 축였다. 
 윤이 가이드로 교구에 정식등록 된건 20살이 되었을때였다. 센티넬였던 상현이 가이딩실패로 인한 능력폭주로 가족을 해하고 행방이 묘연해진후 굳이 가이드의 길을 택한 윤에게는 다행히 양신부라는 든든한 센티넬이 있었다. 아무리 가이딩 능력이 좋고 본인은 괜찮다고 해도 센티넬과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는 윤이 어려웠던 교구에서도 자신을 키워준 사람이자 가장 믿음을 줄수 있는 센티넬과의 1:1관계가 있다면 다른 센티넬을 붙여줄 필요가 없다 판단하여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해주었다. 
 그러나 양신부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지게 되었다. 성관계를 완전히 배제한 그 담백했던 관계가 새로운 센티넬을 만나야하는 윤에게는 곤란한 일이었다. 사제들 중에서 가이드와 센티넬이 나오는 경우 그들을 관리하는 교구의 특성상 손을 잡거나 끌어안는 수준에서의 가이딩을 권장하고 있었으나 1:1간의 관계에서는 암묵적으로 성행위가 용납되고 있었다. 그러나 윤은 말로만 들었을뿐 성행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양신부는 지금까지 많은 가이드와 합을 맞춰온 베테랑이고 안좋은 기운을 많이 접해 최윤에게 안좋은 것들을 보여주게 될것이 걱정된다고 가이딩을 하더라도 손을 잡는 수준에서 그쳤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부자관계에 가까웠고, 그 배려 덕에 윤은 완전한 동화와 가이딩을 해보지 못한채로 양신부와 십 년을 가까이를 맞춰왔다. 그러다 양신부가 밤에 악마들이 저를 괴롭힌다, 저는 더 이상 능력을 제어할수 없는 상황이다, 대신 다른 이들에게 힘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식으로 교구에 이야기 하고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한계에 왔다고 하는 바람에 윤은 새로운 센티넬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10년을 다른 센티넬과 함께한 가이드를 쉽게 제 사람으로 데려갈 사람은 흔치 않았다. 심지어 갓 성년이 된 윤이 갖고 잇던 묘한 분위기덕에 암암리에 윤과 양신부가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소문이 돌았고 입밖으로 내기도 더러운 소문을 함구하다보니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또한 제 업이겠거니 받아들이며 살아가던 윤이 제 능력을 썩히는 것이 아까워 몇 번의 모임을 참가하였고 그러다 만나게 된 것이 윤화평이었다. 
 무난한 삶이라곤 할수 없지만 등을 기댈수 있었던 양신부가 있었던 윤과는 달리 화평의 질답지는 읽는것만으로도 힘겨운 것들이 덤덤한 문체로 적혀있었다.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부재, 화평이 센티넬임을 자각한 순간에 일어난 참사, 각인까지도 아닌 단순한 파트너쉽을 맺고있는 가이드조차 없음에도 꾸역꾸역 능력을 사용하려 했던 이유 등 아무렇지 않게 적혀있었다. 
 윤은 그 날 밤 윤은 화평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다음날, 자신이 이렇게 밀어냈던 사람에게 연락을 어떻게 처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윤이 주저하는 동안 화평은 새벽부터 일어나 두사람의 첫 구마준비를 미리 해두었다. 사전인터뷰에서 청년과 대화를 하였을 때 청년에게 붙은 것은 아마도 동물령으로 추정되었고 악의가 없이 다만 옆에 있고자 했던 마음이 남아 하늘로 가지 못한 것 같았다. 이승에 남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힘이 약해지고 의사라고 할것들이 사라지면서 청년의 운이며 기운을 앗아가게 된것이라면 구마 자체는  윤과 첫 합을 맞춰보기에는 딱 좋은 건수였다. 
 악의가 없으니 천도를 하는데도 부담이 없고 실수하더라도 자신이나 부마자가 다칠 일이 아니었다. 윤의 가이딩실력을 확인하기에도 적당했고 이래저래 좋은 일이었다. 그렇다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생각은 없기에 챙겨야할 것들을 꼼꼼히 챙기고 다시 한번 순서를 숙지했다. 남은 것은 윤의 연락뿐. 급한 일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고 싶었다. 
 그때 그런 화평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침 9시가 지나자마자 윤에게서 문자가 왔다. 


‘날씨가개나싶더니오랜만에서리가내렸네요?잘주무셨나요?윤화평씨?마태오임니다??’


 오타도 많고 mms로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띄어쓰기도 꼭꼭 붙여놓은 문자가 왜 이렇게 귀엽게 느껴지는지, 편지도 아닌 고작 문자 하나에도 서툰 고민의 흔적이 남아있어서 소리내어 웃어버리고만 화평은 스스로에게 당황했다.


 ‘날짜 언제 가능? 걔는 평일만 된대. 나는 모레랑 다음주 월화수 가능.’
 ‘아침먹었어? 미사 가?’
 ‘특별한일정은업서서모레다음주다가능합니다.약속잡고통보하주세요.’


 구마준비를 끝내고 영 귀찮아서 아직 치우지 않은 이불 위에 풀썩 누워 문자를 하던 화평은 윤의 답을 조금 기다리다 부마자 청년에게 연락을 해 모레 두시정도로 시간을 정했다. 윤에게는 만나서 점심 먹고 이야기 좀 하고 가면 되겠지 싶어 열두시쯤이라고 말을 하고 나니 돌아올 답을 기다렸으나 윤에게서는 별다른 답이 오지 않았다. 윤에게서 왔던 두 통의 문자를 번갈아 읽어보던 화평은 나지막히 ‘써늘하구만.’ 하고 입으로 내뱉고 이불을 끌어다 덮었다. 시작도 안했는데 까이는건 아닐까 괜히 마음 졸이고 있던 화평의 긴장이 풀리고 나니 밥보다 급한건 잠이었다. 

 첫 구마 당일, 화평의 말을 그대로 믿고 12시 라고 생각했던 윤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교구에 보고를 하러 갔다가 실제 약속시간이 2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윤이 덤덤하게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가볍게 목례를 하고 나가는 것을 보며 수녀님은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부마자와 잡은 시간이 아니라는걸 알았지만 윤은 그래도 화평과 약속한 시간에 약속한 장소에 나와 화평을 기다렸다. 이력을 살폈을 때 화평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12시 정각이 되도 화평은 나타나지 않았다. 날짜나 시간을 잘못 알았나 싶어 윤이 핸드폰을 꺼내 문자함을 다시 천천히 읽어보고 오늘 날짜를 확인할 때 쯤에서야 화평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빨리 왔네. ”
 “제가 빨리 온게 아니라 윤화평씨가 늦은겁니다. ”
 “뭐 그런걸 굳이 따지고 있냐.”


 화평은 윤이 시켜둔 딸기크림프라푸치노를 보고 주문을 하러 간다며 핸드폰을 두고 자리를 비웠다. 윤은 아주 방금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던걸 취소하고 싶어졌다. 화평이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와 맞은편에 앉더니 아직 물에 잘 섞이지도 않은 커피를 빨대도 꽂지 않고 그대로 벌컥 마셨다. 


 “그 분은 언제 오시나요?”
 “어, 아. 말 하는걸 까먹었네. 답오면 말해주려고 했는데 답이 안와서. 시간 바뀌었어. 2시래.”
 “그렇습니까.”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확인할 방법이야 있지만 이번 일을 함께 해야할 화평에게 괜한 의심을 하고 싶지 않아 윤은 크림을 빨대로 푹 찔러 한입 크게 떠먹었다. 화평은 의자등받이에 푹 기대어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다가 툭 물었다.


 “단거 좋아해?”
 “좋아하기도 하고…….”
 “?”
 “그…… 어린애가 커피 마시면 안된다고 하셔서……. 커피가 들어가지 않는 종류로 고르다 보니 입맛도 이렇게 되버려서요.”
 “아 전 파트너?” 


 화평은 윤의 대답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윤의 앞에 제 커피를 내려놓고 윤이 마시던 잔을 당겨와 한 입을 베어마셨다. 혀 끝에 남는 단맛에 묘한 얼굴을 하고 자각거리는 얼음을 굳이 씹어먹더니 마셔봐 하고 제 커피를 밀어주었다. 저런 반응을 보일거면서 대체 왜 마시는건지 윤은 윤화평이라는 도통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윤은 화평이 권한대로 화평이 마셨던 커피를 새 빨대를 꽂아 한 모금 마셨다. 첫 맛은 군고구마 같은 구수한 맛이 느껴지고 혀를 굴리면 입에 침을 고이게 만드는 산미에 윤의 눈이 조금 커졌다. 잠을 못잘걸 걱정해 아주 조금 머금었던걸 삼키고 나면 입 안을 채우는 커피 잔향에 입안 가득 공기를 넣었다 숨을 코로 뱉으며 향을 느꼈다. 그리고 가볍게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면, 화평이 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픽 웃었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티가 나는게 조금만 더 설레게 하면 금방 넘어올 것 같았다. 원래 커피가 이런 맛인가요? 하고 물으며 소리 없이 입맛을 다시던 윤이 화평을 바라보며 제 음료를 다시 마셨다. 화평은 커피에 꽂혀진 까만 빨대 끝, 입 닿는곳에 고인 커피 한 방울에 빨대를 뽑아 옆에 내려두고 컵에 입을 대 얼음을 씹었다. 


 “입에 맞아? 여기 커피 맛있어.”
 “음. 입에 맞는지는 잘 모르겠고 되게…… 신기한 맛이네요.”
 “여기 더치도 맛있거든. 다음에 오면 마셔봐.”


 고개를 끄덕이던 윤이 아! 하더니 가방에서 주섬주섬 서류를 꺼냈다. 단정해보이는 얼굴처럼 삐침까지 꼭꼭 들어가있는 글씨는 반듯하게 종이를 채우고 있었고 화평은 그 종이를 받아들고 윤의 얼굴과 번갈아 보았다. 윤의 가이딩을 받아야할 화평에게 자신에 대해 알려주는 질답지였다.  


 “윤화평씨에 관한건 교구에서 받아서 읽었습니다. 윤화평씨야 이런거 상관없으시겠지만 이게 룰이니까요.”
 “상관없는건 아니고, 이런식으로는 싫다는거지.”


 종이를 탁 소리가 나게 테이블위에 올려둔 화평이 종이를 사이에 두고 그 위에 양 손을 펼쳐 올리더니 윤에게 손을 까딱였다. 


 “싫습니다.”
 “서로를 아는데 이것만큼 빠르고 단순한게 어딨어.”


 대답 대신 윤이 종이를 화평의 쪽으로 더 밀었다. 그래서 읽으시라고 드린거잖아요. 짜증이 섞인 목소리에 화평이 윤과 눈을 마주치다가 기습적으로 훅 손을 뻗어 이번에도 윤의 손을 잡으려 했으나 윤이 이번에는 당해주지 않았다. 


 “넌 왜 다 싫대? 난 다 좋다고 하는데.”
 “윤화평씨가 자꾸 그러니까 그렇죠.”
 “시간 낭비하지말고 빨리.”


 어차피 할 거잖아. 화평의 말에 싫다구요! 하는 윤의 목소리가 카페내에 울렸다. 윤은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자 귀를 조금 붉히며 화평을 노려보았다. 화평은 헛웃음을 터트리고 다시 손을 까딱였다.


 “어차피 보여주고 싶은것만 보여줄수 있잖아. 니가 저기 썼던거 그냥 보여주면 되는거 가지고 왜 이래.”


 화평이 하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센티넬이나 가이드로 교구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자신이 상대방에게 전이하는 것을 제어하거나 상대방이 전이해오는 것을 밀어내는 것을 배워야 했다. 


 “그럼 그날은 왜 그런걸……!”
 “목소리 좀 낮춰.”


 우습게도 윤의 목과 귀는 더 이상 붉어질수 없을만큼 달아올랐으면서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첫 만남에 고백한 화평이 그런식으로 자신을 물고 빠는 욕망을 보여준게 실수가 아닐거라는 생각을 윤도 안해본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날 화평에게 받았던 것은 윤을 통채로 입안에 넣고 굴려대는것처럼 질척이고 냄새나는 날것의 것이라 실수일거라고 생각했다. 윤에게 붙어있는 소문을 알면서도 그런식으로 욕망을 강요할만큼 화평을 저열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 애써 부정했던 현실을 이런식으로 마주하게 될줄이야. 


 “최윤. 어떻게 할거야. 그사람 그렇게 살게 둬?”


 윤의 시선이 마구 흔들리는걸 보며 화평이 조금 더 윤 쪽으로 손을 뻗었다. 닿을 듯 말듯한 거리에서 멈추면 윤이 화평이 잡지 못하게 하려는듯 제 손을 꽉 움켜쥐었다가 싫으면 갈게, 하는 화평이 펼쳐놓은 양 손 위에 손을 겹쳤다. 
 차갑고 축축한 윤의 손과는 달리 화평의 손은 뜨겁고 건조했다. 화평은 손 끝에 눅눅하고 단단한 손바닥이 닿고 윤이 눈을 천천히 감는걸 바라보며 윤을 향해 마음을 열었다. 
 하나씩 보여줄줄 알았더니 윤의 정리되지 않은 기억들이 엉겨 화평에게 날아들어왔다. 이렇게 될줄 몰랐는지 감겨 있는 윤의 눈두덩이가 움찔거리고 그때마다 속눈썹이 떨리는걸 보니 기분이 묘했다. 처음 파트너쉽을 맺게 된 날의 설렘, 첫 가이딩을 할때의 두려움, 폭주를 보았을때의 공포, 윤이 싫어하는 것들과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것들이 죄다 섞여있었다. 
 화평은 그것들을 천천히 느끼며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될것들을 보여주는 윤의 정직한 성정을 생각했다. 숨기려했던 것 같지만 자신의 정보를 멋대로 알게된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이나 제게 실망한것까지 느껴졌다. 그럼에도 인간의 선의를 믿고 여전히 자신에 대해 호감을 띄려 노력하는 윤을 이용한다는데 죄책감이 피어올랐다. 
 화평은 혹시나 자신의 마음을 윤이 알게될까 청년과 약속을 잡은 순간의 감정이나 생각을 모두 배제하고 연락을 했던 순간의 장면만을 보여주었다. 윤의 손이 움찔 하더니 천천히 눈을 떠서 화평을 마주했다. 


 “그럴줄 알았어요.”
 “어떻게 알았어?”
 “오늘 교구에 다녀왔습니다. 제 가이딩이 실패할수도 있으니까요.”
 “그런거 하나하나 다 교구에 찌르면 일 어떻게 하려고 그래.”


 잘요, 윤은 맞닿아있던 손을 당겨 책상 밑으로 내렸다. 화평은 문득 제 손에서 미끄러지듯 멀어지는 윤의 손을 조금 더 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청년과의 약속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갈까요. 윤이 흐트러져있던 서류들을 하나로 모아 툭툭 정리해 가방에 넣으려 하자 화평이 줬다 뺐냐며 한 귀퉁이를 잡고 서류를 빼앗아 갔다. 
 안 보신다면서요. 하고 톡 쏘는 윤을 모르는척 하며 화평은 서류위의 글자들을 훑어봤다. 질답지라는 형태를 띄고있지만 내용은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가까워서 키나 몸무게, 혈액형까지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화평은 종이들을 가로로 두번 접어서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그냥……. 한번 봐보는거지. 가자.”


 남은 커피를 한번에 후루룩 마신 화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윤이 아닌 다른 가이드를 찾기엔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몰랐다. 첫 일을 마지막 일로 만들수는 없었다. 완벽하게, 깔끔하게 능숙하게 잘 해내자. 화평은 카페 손잡이를 훅 밀어 윤과 함께 부마자를 만나기 위해 향했다. 
 

 


 부마자를 만나고 구마를 마무리하는 것은 번개불에 콩볶아먹듯 순식간이었다. 집에는 여전히 죽은 자를 떠올릴수 있게 하는 것들이 많았다. 쯧 혀를 차며 휘이휘이 허공에 손을 젓는 화평의 뒤를 쫓아온 윤이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손 잡아드릴까요.”


 윤의 말에 화평은 어이없는 듯 웃더니 됐으니 거기서 기도나 하라며 윤을 앉혀두었다. 그 말에 윤은 정말 화평의 구마가 끝날때까지 얌전히 부마자의 옆에서 제 신에게 화평과 부마자의 안전을 기도했다. 화평의 능력은 가이드와 상호전의를 하듯 악마를 받아들여 설득해내거나 피치 못할 상황에서는 정신력으로 눌러 제거하는 방법이었다. 부마자 몸에 있는 령을 불러내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그의 생각과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알수 있었다. 본질이 나쁜 것일수록 부정적인 생각들이 화평의 무의식에 자리잡아 후유증처럼 남게되지만 이번건의 경우는 가벼운 아쉬움 수준이었다. 
 제 몸에 붙어 있던 것이 십년 넘게 기르던 잉꼬였으며 그 역시도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는걸 알게된 전 부마자 청년은 어딘가 조금 쓸쓸하게 보였다. 화평은 그에게 미련을 남겨서는 안되며 그 마음이 안좋은 것을 불러들일수 있다며 경고하고 동물령을 좋은 곳으로 갈수 있도록 인도했다.  
 구마가 끝나고 그는 윤에게 주에 대한 믿음과 기도로 이겨내지 못하고 화평을 따른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은 아닌지 묻고 윤에게 감사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구마 후에 삿것들이 자주 보이는 창문이나 문 옆 빈공간을 확인하고 있던 화평을 보고 화평에게도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화평은 꽤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멀뚱히 앉아있던 윤에게 나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화평은 집을 나오기 전 집냄새를 맡고 현관을 나서 다시 한번 냄새를 맡았다. 집안을 채우고 있던 비릿한 짐승 냄새도 빠진걸 보면 구마는 완벽하게 된 것 같았다. 가이드가 없는 상태로 구마를 하게 되면 환청이나 환시를 겪는 화평이지만 그러나 이번에는 최윤이라는 가이드가 있다는 것 자체로 안정을 찾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뭐해요? 성당으로 돌아가?”
  “네. 보고서도 작성해야 하고 도와드릴 일이 좀 있어서요.”
  “그래? 가지 말지.” 
  “?”
  “밥 먹으러 가자.”
  “괜찮습니다.”


 짧은 대화를 하며 차로 다가선 화평이 보조석 차 문을 열고 어서 타라는듯 윤에게 눈짓을 보냈다. 윤은 아니요, 하고 한번 더 거절하더니 수고하셨습니다 하며 한발자국 물러섰다. 그러나 화평이 문을 닫지 않고 아, 얼른 타 춥다. 하고 윤에게 눈치를 주었다. 


 “5시까지는 돌아간다고 말씀 드려서 오래는 못 있어드립니다.”


  한숨을 내쉬고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 윤은 탁 소리나 나게 플립을 닫았다. 차에 타 두 사람이 벨트를 매는 동안 화평은 첫 성공 기념으로 돼지고기는 너무 흔한 것 같고 소고기라도 구워야겠다 싶어 근방의 정육식당 위치를 고민했다. 처음 봤을때는 몰랐는데 아까 손을 잡아보니 손에도 손목에도 살이 붙어있지 않았다. 화평은 운전을 하며  곁눈질로 윤을 훔쳐보았다. 원래 저렇게 딱 맞게 입는 건지 딱 붙어 판판한 가슴 라인이 훤히 보이는 셔츠에 그렇게 말랐는데도 의자에 앉으면 대각선으로 주름이 잡히는 바지가 신경쓰였다.
 가게 앞에 주차를 하고 들어가 아무데나 털썩 주저앉고 화평은 채끝 2인분 주세요 하고 주문했다. 1인분에 3만원이 넘는 가격에 윤이 놀라 소고기 드시려구요? 하고 되물으면 기념이니까 하고 사이다도 하나 주문했다. 앞으로도 저와 함께 사람들을 도우려면 조금 더 살이 붙고 체력이 있었으면, 싶었다. 고기도 많이 먹이고 같이 산에도 좀 올라가고 그러면 좀더 보기 좋아지겠지. 
 고기가 나오자 집게를 받아들고 제가 굽겠습니다. 하는 윤에게 화평은 고기 잘 구울 자신 있느냐 물었고 윤은 슬그머니 집게를 넘겨주며 아니오, 하고 대답했다. 곱게도 자랐네. 화평의 말에 윤이 대답없이 수저와 젓가락을 놓고 물을 따랐다. 그 사이 화평은 뜨끈하게 올라온 불판에 고기를 올렸다. 고기를 올린지 얼마 되지도 않아 고기 위로 자박하게 육즙이 고였다. 


 “공기 먹어요? 난 하나 하려고. ”
 “저는 누룽지요. ”
 “취향 한번 확고하네. 오케이. 사장님 여기 공기 하나 누룽지 하나요!” 


 주방 안쪽에서 네~ 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화평은 고기를 한번 더 뒤집었다. 연하고 촉촉한 속살이 보이는게 딱 맛있게 익어 침을 꼴딱 삼키면 윤이 가만히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사주는건 난데 참.”


 화평이 고기를 제 앞으로 가져와 가위로 석석 썰어 판위에 한번 굴리더니 맛있어 보이는것들을 윤의 앞에 굴렸다. 그리고 제 앞에 있는 고기를 가져다 밥위에 얹으며 거친 젓가락질을 하는 화평에게 윤은 작은 목소리로 잘 먹겠습니다 하는 인사를 했다. 화평은 소금을 콕 찍어 먹는 윤을 보며 사이다를 따 마치 술인것처럼 술에 따라 윤의 앞에 두고 잘 익은 고기를 씹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 한마디 나누지 않고 한판을 비우고 나자 주문해두었던 누룽지와 밥, 된장찌개가 나왔다. 윤이 가볍게 꾸벅하는 것과 달리 화평은 실실 웃으며 여기 고기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며 너스레를 떨고 한손으로 공깃밥을 움켜쥐고 탁탁 흔들어 뚜껑을 열었다. 


 “먹을만 해요? 이 근처 가게중에선 여기가 제일 맛있어. ”
 “네. 맛있네요.”
 “맛있어요? 다행이네. 이거 뇌물이거든.”


 윤은 콜록, 하고 작은 기침을 하고 가슴을 퍽퍽 치더니 다급하게 물을 마셨다. 콜록, 큭, 콜록 하는 기침을 하며 얼굴이 벌개진 윤을 보고 화평은 픽 웃더니 컵에 물을 더 따라주었다.


 “나랑 하는거 생각보다 괜찮지 않았어요? 나 그쪽 생각보다 좋은 사람일텐데.”


 가득 따라준 물을 한번에 다 삼킨 윤이 숨을 길게 뱉었다. 사심없는건 돼지고기까지라더니 틀린 말은 아니었나보다 생각하며 윤은 일부러 크게 썰어진 고기를 제 앞으로 가져와 먹었다. 마음은 무거워도 혀는 솔직해서 입안에 터지는 육즙은 여전히 맛있었다.  


 “자신감이 대단하시네요.”
 “아니이, 신부님 입장에서도 손 덜가고 지저분한거 안하고 좋지 않나? 내가 예수쟁이랑 섹스를 하겠어 뭘 하겠어.”


 집게를 허공에 휘이휘이 저으며 화평이 말하고 고기를 조금 더 밀어주었다. 


 “하기 싫다는 사람한테 하는 취미는 없고. 이번 일 잘 됐으니까 보고서 잘 써서 올리면 다음 일 들어올텐데 같이 해보던가.”


 윤은 기가 찼다. 하기 싫다고 몇 번이나 거절한걸 기어이 여기까지 끌고왔던 화평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싶어 입술을 달싹이다가 고기 두 개를 한번에 집어먹었다. 자신에게 그랬던것에 나쁜 의도는 없었던거 같고 결과적으로 화평 덕분에 이번 사건을 해결할수 있었다. 화평의 말대로 합을 맞춰보니 정말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었다. 생각을 정리하며 입안의 기름기를 달래려 누룽지를 후후 불어 먹었다. 


 “봐서요.”


 윤의 말에 화평이 씩 웃었다. 이거면 뭐 다 넘어온거지 싶어 웃음이 나왔다. 화평은 고기 더 먹을래? 하며 불판에 올라와있는 마지막 한점을 윤의 앞접시 위에 올렸다. 상 위에 올라가있는 영수증을 흘깃 바라보며 아닙니다, 하는 목소리에는 약간의 미안함이 서려있었다. 나이께나 먹은 사내자식이 저렇게 마음이 약해서 어떻게 살았나 싶어 고개를 저었다. 그럼 가자. 

 첫 구마가 완벽하게 끝나고 난 뒤 화평은 윤에게 파트너쉽 혹은 그 이상의 각인을 바라며 일을 해결해 나갔다. 첫 구마때처럼 약속시간보다 이르게 만나 손을 잡아 서로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들을 주고받고 서로를 안정시킨 후 구마를 하면 성공적이었다. 시간이 피치 못할때에는 구마가 끝나고서라도 꼭 손을 잡았다. 30살이 넘은 사내 둘이서 손을 마주잡고 있는 것은 조금 낯간지러운 일이었으나 센티넬과 가이드관계라면 그보다 더한것도 해야했다. 
 함께한 횟수가 7번을 넘어갈 때 쯤에는 윤이 양 손바닥을 천장으로 향하게 하여 화평에게 내미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동화를 위해 윤의 양 손위에 손을 올리던 화평은 그 납작하고 평평한 손바닥을 보며 오체투지를 하며 부처님을 받드는 불자를 떠올렸다가 애써 속에서 밀어보냈다. 그러나 무의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면 더 떠올라 결국엔 화평의 발을 받들고있는 윤의 모습까지 상상해버려 매서운 눈을 한 윤에게 호되게 혼났다. 
 서로에 대해 잘 알아가는 만큼 악의없는 동물령이나 조상령을 천도하는데서 시작된 구마는 자릿수가 바뀌면서 이제 조금 더 본격적이 되었다.
 유독 화평이 피곤해 했던 그 날도 손을 잡고 긴장을 풀었던 두 사람은 부마자가 있는 곳의 문을 열었을때 안개속에 있는것처럼 부연 시야에 당황했다. 화평은 긴장하고 있는 윤의 등을 팡 치고 걱정말라며 윤을 달랬다.
 윤은 걱정을 꼭꼭 숨겨가며 방 한구석 의자에 앉아 화평의 안녕과 주께서 부마자를 악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주시기를 바랬다. 그러나 구마를 진행할수록 밝아져야 했던 창문은 깨질듯 흔들리고 저 멀리서부터 까마귀 우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와 동시에 씨근거리며 알수 없는 것들을 웅얼거리는 화평이었다. 윤은 제 손에 들려있던 묵주가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움켜쥐고 화평에게 다급하게 다가가 화평의 등을 끌어안았다. 


 “윤화평씨!”


  화평의 명치께에 위치하게 된 묵주를 바짝 가져다 대었다. 그러나 화평은 그보다 먼저 윤의 평평한 가슴팍이 화평의 등 뒤에 닿을때 화평을 고통스럽게 했던 기운이 닿아있는 등에서부터 물감 번지듯 확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손을 잡는 것과는 비교할수 없었다. 그 덕에 윤이 눈을 꼭 감고 좋은 것들을 상상하기도 전에 느낄수 있을 만큼 묵직했던 공기가 좀 가셨다. 
 그릉거리는 소리를 내던 화평이 잠잠해지자 이제 괜찮은가 싶어 윤이 끌어안았던 손을 놓으려고 하면 화평이 다급하게 윤의 손을 붙잡았다. 윤은 화평이 원하는대로 고개를 들어 화평의 정수리에 턱을 괴고 다시 화평을 안았다. 화평을 통해 부마자가 쌓아두었던 인간을 향한 분노가 윤에게 흘러들어왔다. 


 “끝날 때까지만이에요.”


 난생 처음 제대로 느껴본 동화는 원래 이런건지 윤에게는 다소 버거웠다. 그러나 이마저도 화평이 속에서 거르고 걸러 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니 혼자 견뎌내고 있었을 화평에게 미안함이 컸다. 윤은 난생 처음 사람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성이 치밀어오르는 것을 이겨내려 꽃이며 나무, 들판 등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것들을 생각 했으나 자꾸만 속 깊은곳에서 그 모든게 다 의미없음을 속삭였다. 
 결국 윤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소속되어있는 성당에 가 기도를 드리는 생각을 했다. 언제인지 기억 나지 않는 지난 어느 날 본당 안엔 옅은 파라핀 냄새가 어른거리고 어긋난 창문을 통해 휘이이 들어오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햇빛에 빛나던 먼지를 바라보았던 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최윤이 사랑하고 지켜내고 싶은 것은 그런 순간이었다. 화평은 윤의 기억 속에서 조금 쓸쓸해져 사라지길 바랬던 저를 괴롭히던 악마도 윤처럼 평온을 찾기를 기원했다. 뱃속부터 간질간질 올라오는 충만함이 몸안에 그득했다. 

 

 


 그날 이후 화평이 혼자 감내하다 그날처럼 아슬아슬 넘치지 않는 수준이 되기 전에 해소를 하기 위한 방법으로 두사람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렸다. 그와 함께 난이도가 올라가는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구마가 끝난 후 화평은 한계치에 다다른 것 같아 아무래도 이러다 집에 가다 사고라도 나는게 아닐까 싶어 카페에 가는게 어떻냐는 말을 했다. 윤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보고서를 제출하고 가야하니 성당에 데려다 달라 하였다. 평소라면 화평의 식사나 차 권유에 거절을 하거나 카페가 아닌 차 안에서 화평에게 쌓여있는 부담을 해결하려고 했을 윤이라 그 날의 대답은 낯설었다. 화평은 백미러로 윤을 흘깃 봤다. 윤은 저 앞의 성당의 십자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윤은 어깨를 움찔, 하더니 아뇨 대답을 흐렸다가 아직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벨트를 미리 풀었다. 화장실 급해? 하는 농담에도 반응해주지 않아 화평은 조금 머쓱했다. 벨트를 다시 차달라고 띠딩, 띠딩 하는 경고음이 귀에 거슬릴 무렵 화평이 성당앞에 주차를 마쳤다. 


 “기다려?”
 “……글쎄요.” 
 “아이고 신부님 대답이 좀 성의없으시네요. 나 어떻게 하라고 그럼?”


 윤은 잠깐 고민하더니 화평의 네비게이션에 한 주소를 찍었다. 그리고 뭐라 묻기도 전에 기다리세요.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제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려 빠르게 걸어 성당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남겨진 화평은 손으로 지도를 확대해보며 어딘지를 확인했다. 성당 근처의 주택가, 화평도 성당을 오가며 주일에 꽉찬 주차장에 주차자리를 찾아 들어가본적이 있는 골목이었다. 
 윤이 새로 받아온 건의 부마자가 사는 곳인가 싶어 시트로 등을 기대고 팔짱을 끼고 게슴츠레하게 화면을 노려봤다. 이번의 구마가 꽤 어려운 일이었는지 어깨도 뭉치고 자꾸만 으슬으슬 식은땀이 나는게 하루에 연짱으로 두 번은 무리일 것 같았다. 나오면 이야기 하자 생각하며 부르르 떨면 그새 제출하고 나왔는지 윤이 익숙하게 차에 올라탔다. 


 “가시죠.”
 “여기 어디야?”
 “…제 집입니다.”
 “응? 갑자기?”
 “일단 가주세요. 가서 설명 드릴게요.” 


 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화평은 눈치를 살피고 주소로 향했다. 여기서 세워주세요. 윤이 내린 2층집은 페인트가 벗겨지거나 한 곳은 없이 단정하게 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뭘 어떻게 하자는건가 싶어 코 밑을 문지르고 있으면 윤이 대문을 열어둔채로 따라오세요 하고 위로 향했다. 화평이 떨떠름하게 차에서 내려 따라 들어가 중문을 앞에 두고 신발을 벗으려하니 윤이 비장하게 화평의 양 어깨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때 절 좋아한다고 하셨던 말 진심이셨나요?”
 “응. 내가 왜 너한테 빈말을 하겠어.”
 “키스 하죠.”
 “응?”
 “물어봤는데, 남들은 다 이렇게 한답니다. ”


 말 끝나기가 무섭게 입술을 쑥 내밀고 화평쪽으로 무게중심을 기울여 오는 윤 덕에 화평은 주춤 물러나 현관문에 몸을 기대게 되었다. 자신에게 홀딱 반하게 만들어서 평생 제 옆에 붙여두고 가이딩이나 받겠다는 처음의 마음가짐은 어디로 갔는지 당황스러웠다. 긴장으로 손끝이 찼다. 
 잠깐만, 최윤 갑자기 왜 그래. 그거 뭐 누구한테 들었어. 흔들리는 윤의 생각이 넘어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윤의 입술을 한손으로 가리면 윤이 눈을 두어번 깜빡이더니 윤이 화평의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화평이 윤을 알아갈수록 윤은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날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죄다 오해였다. 쪽 소리도 나지 않는 입맞춤이 왜 이렇게 견디기 어려운지 화평이 손을 떼면 윤이 서러운 듯 어깨에 올렸던 손을 천천히 목으로 뻗었다. 양 손으로 뒷목을 감싼 윤이 소근거렸다. 


 “센티넬을 안정시키기 위한 성적 행위의 중요성은 가이드 개론에도 나와있는 이야기입니다.”
 “아. 야 최윤 나 진짜 괜찮아. 너랑 굳이 이런거 안해도 되니까 무리하지 마.” 


 최대한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하는 화평의 등줄기에 소름 끼쳤다. 꼬장꼬장해보이는 것관 달리 사적인 자리에서 경계가 느슨해지면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던 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것도 알아차릴수가 없었다. 


 “저는 제 센티넬인 윤화평씨한테 최선을 다 하고싶습니다.”
 “응 그래 알았어. 너 노력하는거 나도 알지.”
 “그러지 말고 저랑 하시죠.” 


 윤이 화평이 도망갈수 없게 뒷목을 붙든채로 몸을 바싹 붙였다. 현관문에 막혀 더 뒤로 물러날 수 있는 곳이 없어진 화평이 최대한 목을 뒤로 젖히려고 힘을 주면 윤이 화평의 다리 사이로 무릎을 밀어넣었다. 아주 말라 둥글지 않고 여기저기가 오목한 무릎으로 화평의 샅을 서툴게 문지르는걸로도 화평은 흥분했다. 
 화평은 윤이 왜 이러는지 알수 없었다. 나랑 하고싶은건가. 한번 하고 말아버릴까. 하지만 윤의 처음을 자신이 그런 마음으로 가져서는 안될 것 같아 하자는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진 화평에게 윤은 첫 만남에 화평이 보냈던 욕망을 벌레가 기어가듯 스멀스멀 보여주었다. 화평이 황급히 윤을 향해 열어두었던 마음을 닫았다. 
 윤은 화평을 가만 내려다보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다가오는 윤의 얼굴을 보며 화평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미리 눈을 감은터라 화평의 입술을 바로 찾지 못하고 인중에 먼저 닿은 윤의 입술이 조금 떨어졌다가 화평의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그 순간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의미 없는 불안과 실패에 대한 걱정, 인간에 대한 불신과 같은 것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방금 닿았던 윤의 입술만 머리에 남았다. 저를 꼭 닮아 얇고 입술에 옅은 각질이 남아 마냥 부드럽지는 않은 입술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 입술을 꾹 눌러떼며 쪽 하고 떨어질 때 입술 사이의 연하고 축축한 부분이 닿았던것까지 좋았다. 화평은 몸에 열이 훅 올라 아까의 식은땀이 마르기도 전에 진땀이 났다.
 화평은 어깨가 들릴만큼 크게 들이켰던 숨을 조심조심 뱉었다. 여전히 입술만 내밀면 서로 닿을 거리의 윤이 목 뒤를 감싸던 손을 내리고 화평과 거리를 벌렸다. 화평은 방금까지 윤의 손이 닿아있었던 제 축축한 뒷목을 머쓱하게 긁었다.  


 “이래서야 거짓말인줄 알겠네. ”
 “애초부터 안 믿었습니다.”


 굳이 저에게 그러실리 없잖아요. 자기 자신을 향해 톡 쏘는 말을 하는 윤은 조금 시무룩해보였다. 아냐, 정말이야. 믿어줘. 소곤거리며 이번엔 화평쪽에서 입을 맞췄다. 힘든 티를 안낸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윤에게는 들킨 모양이었다. 이런 짓을 해놓고 아무렇지도 않나 싶어 가만 들여다보면 눈을 마주치려는 화평을 보지 못한척 다른곳으로 시선을 두었다. 얼굴이 평소보다 좀 벌개져 있었다. 화평은 진짠데, 하며 흐 웃었다. 


 “신부님 근데 혹시 이거 첫 키스에요?”
 “…아닙니다. 잘 가세요.”


 화평은 윤의 손이 뻗어져오는 것을 보고 이번엔 안아주려나 싶어 팔을 벌렸다. 그러나 윤은 화평의 옆에 있는 현관문의 잠금을 풀고 문을 활짝 열어주어 화평은 제 자신을 끌어안고 어깨를 다독이며 민망해했다. 오랄땐 언제고 이젠 또 지멋대로 가래. 툴툴거리면서도 예예 갑니다 하고 뒤돌아섰다.
 

 


 시작이 어렵다고, 화평은 조심스러웠던 처음과 달리 입을 맞출 때 살짝 감기는 눈두덩과 입술을 떼면 스르륵 떠지는 눈을 보려 만나는 날이면 하루에도 몇 번이고 손을 잡고 입을 맞췄다. 사람들 앞에서는 부끄럽다며 굳이 화평을 집 안으로 데려갔던 윤도 뽀뽀가 반복되자 대문 안, 차 안으로 점점 대범해지더니 나중에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화평이 손을 꼭 잡으면 익숙하게 입술을 내어주게 되었다. 
 가이드가 아니었더라도 자잘한 악마라면 혼자 구마사제로 일할수 있을 만큼 신실한 윤과 타고난 감과 센스를 가진 화평의 조합이니 둘이서 해결해내지 못할 일은 없었다. 타 센티넬의 능력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라 자연발생한 건만을 생각하면 밀려있던 일거리는 거의 다 해결했고 느긋한 일상이 지속되었다.
 교구의 걱정거리 둘이 잘 만나는걸 보고 모두가 안심했다. 괜시리 화평에게 경계를 하셨던 양신부님은 구마를 끝내고 돌아온 윤이 보고서를 제출하며 뿌듯한 얼굴을 하는걸 보며 마음을 비워내셨다. 

 그러다 큰 귀신, 박일도가 나타났다. 박일도는 화평이 그렇게나 가이드를 찾아다녔던 이유였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죽음 모두 다 박일도와 관련이 있었다. 박일도의 잡귀들을 구마해나가며 꼬리를 밟기 위해선 일주일에도 몇 번씩 제 능력을 소모했다. 이틀에 한번이 한계라고 생각했던 능력은 하루에 한번을 써야만 했다. 그렇게 박일도의 거처와 정체를 알아내기 직전에 이르자 화평은 망가져가고 있었다.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 언뜻 보이는 환시에도 윤이 어른거렸다. 윤은 성당에 데려다주고 돌아서는길 윤화평씨 하는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면 멍투성로 활짝 웃는 윤이 있었다. 눈을 꽉 감았다 뜨면 다시한번 제 옆에서 윤화평씨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면 조심스럽게 손을 잡아왔다. 성당 앞은 싫다고 했으면서 마리아상을 등지고 몇 번이고 쪽쪽 입을 맞춰주는 윤에게 죄악감이 피어올랐다. 
 화평은 그제서야 윤의 전 파트너였던 양신부님이 왜 윤과의 파트너십을 끊었는지 이해할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몰아붙여진 상황에서 무슨 짓을 해도 자신을 믿을것만 같은 윤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윤이 절망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고싶어 안달이 났다. 이래서야 박일도를 만나서 제대로 구마해내기는커녕 그를 받아들여 윤을 해치지 않는게 우선이었다. 


 “괜찮아. 응, 괜찮아 최윤. ”


 애타게 쪽쪽 맞춰오는 윤이 손에 힘을 주었다. 어떻게든 화평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어 하는게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윤에게 그런 것들을 보여줄수는 없었다. 마음을 뚝뚝 잘라내 윤에게 보여줄수 있는 것들만을 보여주면 윤이 다시한번 입을 맞춰왔다. 괜찮으니까 가, 하고 등을 떠밀어 보내면 윤이 느린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 텅 빈 방안에 누워있으면 자꾸 최윤 생각이 났다. 얼굴을 안보면 나을까 싶어도 당장 내일도 모레도 윤과 만나야 했다. 허한 속에서 불쑥 사람을 죽여야 할 것 같았다. 이건 차라리 확연하게 악마의 탓임을 알수 있었기에 나았다. 
 윤과 눈을 마주하면 윤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씹어삼켜버리고 싶었다. 싫다는 윤의 구멍을 벌려 성기를 쳐박고 서러워할 윤의 입술에 사정하고 싶었다. 꿈속에 나타나 자신에게 올라타 허리를 흔들어대는 최윤 탓에 자고 일어나면 속옷이 눅눅하게 젖어있었다.  이래서는 안된다는 마음에 자위를 해도 자꾸 윤이 생각났다. 윤이 아무리 좋은 것들을 보여주어도 순간뿐이었다. 

 다음날 수척해진 얼굴을 한 화평은 걱정스러워하는 윤을 다독여 꾸역꾸역 부마자의 집으로 향했다. 뽀뽀 해드릴까요 하는 윤의 말에 힘없이 웃으며 혹시 모르니 이번에는 마음을 단단히 닫고 있으라는 말을 덧붙였다. 악마가 들렸을거라 생각된 이는 이제 막 결혼을 한 자였다. 집을 들어서자마자 역한 피비린내가 났다. 불안한 마음에 화평이 신발을 벗지도 않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덕에 베란다 샷시를 뜯어내고 넘어가려던 부마자의 몸을 붙잡을수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13층의 높이에서 떨어져 살릴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준비없이 악마를 받아들인 화평은 마치 전기에 감전된것처럼 바르륵 떨었다. 윤화평씨! 상황 보존을 위해 추가지원 요청을 하던 윤은 경련하는 부마자와 화평에게 달려들었다. 네놈의 썩은 피가 어디 갈줄 아느냐. 네놈의 어미며 애비는 평생을 후회했다. 온 천지에 너를 사랑하는 이 없이 너는 홀로 죽을 것이다. 화평의 입에서 쩌렁쩌렁 새어나온 목소리에 윤은 귀가 멀어버릴 것 같았다. 
 윤은 부마자의 눈이 뒤로 확 돌아가는가 싶더니 전신에 힘이 빠져 축 늘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온전히 화평과 악마의 싸움이었다. 그릇이 죽으면 다른 사람에게로 향할수 있기에 악마는 화평을 죽이려 했다. 윤은 베란다로 향하는 화평의 허리춤을 붙들었고 화평을 받아드리려 마음을 열었다. 그러나 화평에게서 들어오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래서는 가이딩도 할수 없었다.
 윤을 매단채로 앞으로 향하는 화평을 멈추게 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 힘을 줘 화평을 잡아 돌리면 화평은 나아가려던 힘 그대로 거실에 널부러졌다. 윤은 화평의 위로 올라타 거칠게 입을 맞췄다. 입맞춤과 함께 강제로 제 생각을 밀어넣으면 화평이 덜걱 뒤로 허리를 젖혔다. 


 “윤화평씨 정신 차려요!”
 “크흑……. 안돼. 떨어져. 도망가 최윤.”


 희망이 보였다.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윤은 괴로워하는 화평의 양 볼을 감싸고 딱 소리가 날만큼 세게 화평에게 입술을 부볐다. 앞니가 부딪혀 입 안이 터졌는지 짠맛이 느껴졌다. 꽉 닫힌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듯 다시 한번 화평에게 생각을 쏟아내면 봇물 터지듯 화평의 생각과 감정이 울컥 흘러들어왔다. 
 강제로 열린 마음에 화평이 윤에게 숨기고 싶었던것들이 윤을 가득 채웠다. 자아를 잃어가던 화평이 하하 웃더니 입술을 떼려는 윤의 머리채를 잡고 제 쪽으로 당겼다. 부지불식간에 밀려들어온 혀가 윤의 입안을 헤집었다. 그대로 잡아먹힐 것 같은 키스였다. 
 윤은 헛구역질을 참아내며 제 입안을 채운 혀를 콱 깨물었다. 갑작스러운 격통에 화평이 윤의 머리채를 잡아 뒤로 젖혔다. 윤이 주머니속의 묵주를 꺼내 손에 감고 한 손으로 화평의 벌려진 입을 틀어막으며 화평의 이마에 묵주를 대었다.


 “천상 군대의 영광스러운 지휘자이신 성 미카엘 대천사여…….”


 천사의 이름을 듣자 화평의 저항이 더 거세졌다. 한 손으로는 윤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뒤로 잡아당기고 다른 손으로는 윤의 손목을 꽉 쥐었다. 목이 아플만큼 젖혀진 고개에 윤은 점멸하는 전등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권세와 폭력과의 싸움에서 저희를 보호하시며, 이 암흑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 아래 있는 악신들과의 싸움에서 저희를 보호하소서.
 화평은 껌벅껌벅 정신이 들때마다 마음을 닫으려 했다. 구마를 해내는것보다 혹시나 자신이 윤을 이용하려 했던게 윤에게 들킬까 불안했다. 그런 화평을 아는지 모르는지 윤은 화평의 문이 닫히지 않도록 버텼다. 윤의 기도가 이어지는 동안 화평은 악마가 점차 제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며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고, 사탄의 압제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빼내신 인간을 도우러 오소서. ”


 몸속 깊은속에서 앓는 소리를 내며 화평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화평이 윤에게 보여준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욕망은 윤에 의해 점차 변화하고 있었다. 멍투성이였던 윤의 몸은 멍이 아닌 손자국이 남고, 싫다는 윤을 범하는게 아니라 윤과 함께 서로를 알아가는 순간이 되었다. 윤이 변화시켜준 두사람은 숨기는 것 없이 전라의 상태로 서로의 몸에 입을 맞추고 애무했다. 좋아해 최윤, 하고 말하며 웃는 화평을 화평은 견딜수가 없었다.
 그 틈을 이용해 화평 속의 악마가 마지막 발버둥을 쳤다. 화평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밀려나 tv장에 머리를 쿵 박았는데도 벌떡 일어나 화평의 위에 올라타 한손은 가슴위로, 한손은 이마 위로 올려 움직이지 못하도록 눌렀다. 끊겼던 기도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화평의 어둠은 걷히지 않았다. 버거운 듯 윤이 고개를 내저으면 땀이 후두둑 떨어졌다. 자신의 거짓과 무능력으로 윤마저 위험하게 만들수는 없었다. 구마가 끝나면 사과를 하자.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빌자. 화평은 마음을 닫는걸 포기했다. 


 “최윤.”


 화평의 목소리에 윤의 눈이 커지더니 윤은 제 손으로 누르고 있던 화평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입술을 떼지 않은채로 말했다.


“하늘에 계신 지존하신 하느님만이 오직 참된 유일한 신이시다. 그러니 너는 사탄에게 돌아가 내가 한말을 그대로 전하라.”


 성자와, 성부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그날, 우습게도 구마를 하러 갔던 센티넬은 부마자가 되어 가이드에게 구마의식을 받아 겨우 살아남았다. 그대로 보고가 올라간다면 센티넬 자격을 의심받고 몇 달은 능력사용을 제제받아야 했다. 박일도를 눈 앞에 두고 그럴수는 없어 화평은 기력을 다해 비틀비틀 차로 돌아가는 윤에게 자신이 보고서를 작성하겠다고 했다. 윤은 휘청이며 몸을 돌려서는 화평을 물끄럼히 바라보다가 네, 그러세요. 하고 대답했다. 
 조수석에 앉은 윤은 눈을 감고 문에 몸을 기댔다. 평은 윤을 집앞까지 데려다주며 생각을 정리했다. 윤이 어디까지 알았는지 알아야 하는데, 했다가 어디까지 알았건 처음부터 다 솔직하게 말하자 싶어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윤이 집 앞에 도착했음에도 윤은 일어나지 못했다. 최윤 일어나봐. 하고 몸을 흔들면 그대로 몸이 흔들리다가 창문에 머리를 쿵 박았다. 그럼에도 윤은 일어나지 않았다. 놀란 화평이 최윤의 몸을 흔들다 그대로 다급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큰 일은 아니었고 과로로 인한 기절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쉰 화평은 혹시 몰라 하루 입원비까지 포함해 윤의 병원비를 수납하고 집으로 향했다. 
 몇시간 후 윤은 깨어나자마자 화평에게 제출할 보고서를 봐주겠다며 작성한 것을 가저오라 일렀고 화평이 엉성하게 작성한 보고서를 수정해주었다. 문제 될것은 쏙 빠져있는 보고서를 보고도 윤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문장이나 단어를 수정하는데 그쳤다. 급한거 아니니까 더 쉬라는 화평의 말에 윤은 쉬는동안 놓치면 어떻게 하냐며 얼른 제출하고 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화평은 사과를 할 타이밍을 놓쳤다. 본인에게 차마 어디까지 알게 되었는지 물을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고백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여태껏 쌓아온 관계를 다시 처음으로, 아니 그 전보다 더 못한 관계로 만들 엄두가 안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윤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전처럼 함께 밥을 먹고 카페도 가고, 심지어 차 안에서는 먼저 손을 뻗어 잡아주기도 하였으며 집에 들어가기 전의 뽀뽀도 빼먹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번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듯 오히려 더 진득하게 스킨쉽을 하며 쑥스러운듯 웃기까지 했다. 그런 모습에 화평의 마음속엔 참 얄궂게도 윤이 그날 진실을 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굳이 모른다면 들쑤실 필요는 없지.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는걸 알면서도 지금을 깨뜨리기 싫어 화평은 자신을 설득했다. 
 그래도 그 이후로 구마가 끝나고 나면 화평은 윤에게 조금 더 솔직해졌다. 윤을 배려한답시고 괜히 나쁜것들을 숨겼다가 일을 크게 만드는것보다 나을거라 판단했다. 윤에게 악마가 제게 남겨두고 간것들을 공유하면 윤은 진저리를 치면서도 그것을 좋은것들로 바꾸어 화평에게 돌려주었다. 
 사소한것들이 남았으나 윤이 함께함에 화평은 어떻게든 다 이겨낼수 있을거 같은 자신감이 붙어있었다. 화평이 강제로 구마당한 일이 있은지 있고 딱 한달째였다. 한곳에서 사람이 벌써 셋이나 죽어나갔다. 단순한 끄나풀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화평은 지난번과 같은 일이 벌어질까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그래서 윤이 들어오지 않기를 바랬다.

 윤을 지키기 위해 전신을 흠뻑 적셨던 성수가 끓어오르며 생긴 상처는 다행히 가벼운 화상이라 이삼일 아리고 말거라 했다. 문제는 양 손의 상처였다. 한번도 이런적이 없었다. 악마가 보여주는 나쁜 상상, 화평과 윤을 흔들리게 하는 그런 상상일거라고 생각했으나 이번엔 아니었다. 
 의사는 보호자임을 자청한 화평에게 정밀검사는 나와봐야 알겠으나 양 손은 당분간 쓰지 못할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입원 해야하는것 아니냐는 말에 의사는 고개를 내젓고 센티넬이시라면 소속된 곳에 요청하셔서 치료 능력이 있는 센티넬의 도움을 받는게 더 빠를거라며 진단서와 의뢰서를 작성해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화평은 주먹을 한번 꽉 쥐었다가 펴며 네, 그렇게 해주십시오. 하고 대답한 뒤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윤의 보조침대에 털썩 앉았다. 
 병실에 누워있는 윤과 달리 화평은 부마자가 손톱으로 할퀸 생채기들 뿐이었다. 화평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교구에 연락을 해 윤의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 한시간 안에 사람을 보내준다는 말을 들을수 있었다. 양신부와의 관계가 끊기고 난 후 꽤 긴 시간을 센티넬 없이 있었던터라 화평과 함께하며 승승장구 해나가는 것을 꽤 뿌듯해하던 윤이었기에 이번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지도 아득했다. 혹시나, 아주 혹시나 이걸 핑계로 자신과의 관계를 끊어내는 것은 아닐까 싶어졌다. 결론적으로 구마는 성공했으니 그 부분을 이야기해볼까 싶었다가도 양심이 콕콕 찔렸다. 
 윤이 깨어나면, 이번엔 정말 다 말해야지. 꼭 말해야지. 다짐하며 손등에 입을 맞췄다. 살며시 쥔 손에서부터 화평을 향한 따뜻한 감정을 느낄수 있었다. 이게 자신을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호의일까. 윤과 일을 하며 자신에게 감사인사를 하던 사람들의 얼굴과 앞으로 남아있는 일들, 여유로워진 통장을 생각하며 전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화평의 마음에 죄악감이 남아 사라지지 않았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받기를 원하는게 부끄러워 견디기 힘들어 긴 숨을 뱉었다. 괴로운 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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